Fiction

나는 장사꾼이 되었다

hursome 2025. 3. 4. 00:00

나는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선생이라 부르지 않았다.
"나는 남의 나라 언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학벌팔이일 뿐이다."
이 말은 나를 지키는 방패이자, 언젠가 스스로를 속일까 두려워 미리 쳐 둔 울타리였다.
'선생'이라는 이름 뒤에 숨지 않도록.
그러나 동시에 나는 믿고 싶었다.
장사꾼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아이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기를.
 
학생들은 인생을 걸고 공부한다.
나는 그런 인생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원이 주요 학교가 아닌 학생들을 내보내려 했을 때 반대했다.
학생이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른이니까. 
아이들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공부를 해야만 하는 사회를 만든 게
우리, 어른이니까.
책임을 지는 게 정의라고 배웠으니까.
가르치는 사람은 정의로워야 하니까. 
공부하겠다고, 그것도 돈을 내면서까지 배우러 온 아이들을
그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내친다는 건 가당치 않았다.
신규 학생을 받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책임질 수 없으면 받지 않는 것이 맞으니까.
하지만 이미 들어온 아이들을 내보내는 것은,
그들을 단순한 숫자로 치부하는 행위였다.

나는 팀장이었다.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그래서 내 의견이 학원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학원의 결정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학원은 학생들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정리했다.
어떤 아이들은 학원을 떠났고,
어떤 아이들은 다른 강사에게 넘겨졌다.
나를 배려한 조치라고 했다.
너무 많은 업무를 맡기면 내가 탈이 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나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학원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최적화였다.
결국, 학원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 것이다. 
그들이 내보낸 건 숫자가 아니라 인생이었다. 
무책임한 유기였다.
그리고 나는,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지난 학기 동안 나는 14개의 시험 대비를 하며 버텼다.
하루하루가 끝없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믿고 싶었다.
'나는 장사꾼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다.'
겨울방학이 되자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맡아야 할 학교의 숫자는 줄었지만, 학생의 숫자는 늘어났다.
학원은 웃었고, 나의 교실은 더 많은 학생으로 가득 찼다.
급여가 낮다는 것쯤은 개의치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었으니까.
가르치는 일은 내게 노동이 아니라 책임에 가까웠으니까.
 
지금 학원이 있는 지역에서는
내가 지향하는 독해법을 제대로 가르치는 강사가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단순한 문법과 어휘의 조합이 아닌 제대로 글을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어휘를 외우고 문제 유형을 반복하며 익힌다.
하지만 언어는 단순한 조각들이 아니라,
의미를 연결하는 흐름과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어야 한다.
반드시 이런 방식으로 글을 읽어야 글을 느낄 수 있다고,
점수와 성적은 그에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라고,
나는 그런 가르침을 지켜왔다.
그래야 마땅히 인생을 책임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그 교실 어딘가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단지 학교가 멀다는 이유로 떠나야 했던 아이들.
혼자만 그 학교 학생이라 학원에서 밀려난 아이들.
한 때 날 믿고 인생을 맡겼던 아이들.

나는 매일 출근하며 혼란스러웠다.
내가 믿었던 나와,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내가 너무도 달랐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거다,
성적표에 적힌 점수는 너희를 나타낼 수 없다. 
하지만 너희가 열심히 노력한 과정은 언젠가 너희의 가치를 증명해낼 거다.
늘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지만, 
학생들은 더 이상 '우리' 학원에서 노력할 수 없다. 
나는 이제 내 말에 책임을 질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게 되었다. 
나는 장사꾼이 아니라고 했는데,
결국 장사꾼이 되어 있었다.


 
학원은 나를 장사꾼으로 만들어 버리고도
여전히 가르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급여를 주고 있었다. 
나는 같은 열정으로 가르치고 있었지만,
내 열정은 장사 수단이 되었고, 
나는 장사꾼이 되었다.
 
나는 장사꾼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장사꾼이 되었으니, 그에 합당한 대가를 요구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장사꾼답게 행동하기로 했다.
미리 사직서를 준비하고, 임금 협상을 요청했다.
남아있는 학생들이 눈에 밟혔다.
나는 이 학생들의 인생도 책임져야 마땅하다.
내가 장사꾼이 되어버린 지도 모른 채 인생을 걸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한낱 장사꾼이 아이들의 인생을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래 고민했다.
협상 테이블에선 장사꾼이 제시할만한 최대한 합리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다만, 내가 제시한 조건이 아니라면 더 이상 이곳에서 일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는 더 이상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지만,
내 본질은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으니까. 
'협상'은 장사꾼끼리 하는 것이니까.
 
결국, 학원은 한 장사꾼의 조건을 거절했고,
사직서를 수리했다. 
 
남아있는 '내 아이들'. 
나는 마지막으로 내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싶었다.
그러나 학원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잦은 강사 교체는 경영의 무능을 드러낸다.
아니면, 내 퇴사를 아이들에게 부정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의 인생을 외면한 배신자로 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떠나고, 학원은 그대로 남을 것이다.
나는 이제 장사꾼이다.
그리고 나를 장사꾼으로 만든 곳을 장사꾼답게 떠난다.
조용히, 흔적도 없이.
 
 
 
 
 
 
 
 
 
 
 
 
 
 


이제 나는,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아갈 길을 찾았다.
학생들은 여전히 공부한다.
나는 다시 그들의 인생을 책임질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에는,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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